[독자기고] 나의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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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탑 독자 김은경

둘째 딸 현주가 거의 반년 만에 찾아와 대뜸 김치를 가져가겠다는 거다.

마치 주인이 맡겨 놓은 물건을 당당히 찾아가듯이···.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매번 채권자처럼 그렇게 당당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김치 한 포기를 내주었다.

고맙단 인사도 없이 떠난 딸을 보내고,

홀로 남은 집에 우두커니 있다 보니 불현듯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현주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첫째와 달리

둘째 현주는 어릴 때부터 애교가 넘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귀여운 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새벽녘에 귀가하니

모두 잠들고 현주만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자지 않고 웃으며 나를 반겨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 생일 한번 거르지 않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아이다.

학창 시절 내내 말썽은커녕

언제나 엄마·아빠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잘되지 않아 집 근처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시작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다 과외 학생 학부모의 터무니없는

요구와 항의에 어쩔 수 없이 과외를 접고,

친구와 조그만 액세서리 가게를 차려 얼마간 운영했으나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30살이 다 되어서야 사위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때부터 또다시 힘든 날이 지속됐다.

결혼 직후 치매로 쓰러진 시어머니의 오랜 병시중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더욱이 사위의 갑작스러운 실직과 그로 인해 부부간 사이가

멀어져 한동안 별거하다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재결합한 상태다.

천사표 현주는 늘 행복할 줄만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약했던 내 심장이

현주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지금까지 심장약을 복용하고 있다.

힘든 일을 수없이 겪다 보니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웠던 현주의 성격도

몰라보게 거칠어지고 날카로워져 갔다.

현주의 불행이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 눈물로 지새운 날도 많았다.

이런저런 상념 중에도 언제 또 득달같이 김치를 찾을 현주를 생각하며,

어느새 배추와 김치 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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